NBA를 보다 보면 종종 궁금해진다. "왜 어떤 팀은 슈퍼스타가 많은데도 약하고, 어떤 팀은 평범해 보여도 강할까?"
돈 많은 구단이 선수들을 싹쓸이하면 쉽게 우승할 것 같지만, NBA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바로 샐러리캡이다.
샐러리캡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NBA 팀 운영에 이렇게 깊게 관여하는지 사례를 통해 쉽게 풀어본다.
샐러리캡이란?
NBA 샐러리캡은 팀들이 선수들에게 쓸 수 있는 총 연봉 한도를 뜻한다. 아무리 돈 많은 구단이라도, 정해진 선 안에서만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명확하다. 모든 팀이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리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돈 많은 구단이 모든 스타를 독점한다면, 경기는 재미없고 결과는 뻔해질 것이다.
그래서 NBA는 이런 룰을 마련했다. 여기까지는 NBA가 내세우는 명분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 스포츠계가 겪었던 아픈 경험이 배경에 깔려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과거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팀들이 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1970년대 라이벌 리그였던 ABA는 NBA와의 치열한 돈싸움 끝에 파산 위기를 맞았다. 몇몇 구단만 간신히 살아남아 NBA에 흡수되었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리그는 한동안 혼란과 침체를 겪었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은 분명했다. 무제한 경쟁은 오히려 시장을 망가뜨린다는 것. 그래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NBA는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샐러리캡이라는 시스템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과도한 지출과 치킨게임을 방지하고, 자금력이 막강한 빅마켓 팀의 독점을 막으며, 구단들의 재무 건전성을 지켜 리그 전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샐러리캡과 함께 알아야 할 개념들
샐러리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을 정리해보았다.
유형
샐러리캡에는 하드, 소프트, 플로어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 하드 캡: 리그가 어떤 이유로든, 팀이 초과할 수 없는 연봉 총액의 최대 금액을 설정하는 것.
- 소프트 캡: 팀이 명시된 최대 금액을 초과할 수 있는 특정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의미.
- 플로어: 연봉 총액의 최소 금액. 최소 금액을 채우지 못하면, 차액만큼 선수들에게 분배 지급한다.
럭셔리 택스
샐러리 캡을 초과하면 초과 금액에 비례해 벌금을 낸다. 초과 금액이 클수록, 벌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버드권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는 샐러리캡을 초과해서도 재계약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이 제도 덕분에 팀은 핵심 선수를 붙잡을 수 있고, 선수는 안정적인 계약을 얻을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예외 조항들이 존재하지만, 입문 단계에서는 "샐러리캡에도 예외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다른 예외 규정과 계약 방식은 계약 시스템 관련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NBA의 샐러리캡은 '소프트캡'이다.
NBA의 샐러리캡은 소프트캡의 방식을 따른다. 원칙적으로 상한선을 두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초과를 허용한다.
하지만 무제한은 아니며, 샐러리캡을 초과하면 그에 따른 벌금을 내야한다. 상한선을 초과해서 돈을 쓸 수는 있지만, 대가를 치러야하는 것이다. 단, 구단이 사치세를 무시한 채 작정하고 돈을 풀면 제재할 방도가 마땅치 않는 한계도 존재한다.
그래서 에이프런 제도를 도입하여 막대한 재정적인 제재를 가하고, 사치세 한도를 벗어나면 일종의 하드캡을 적용한다. 재정 뿐만 아니라 계약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제한한다.
에이프런(Apron) 제도란?
에이프런은 사치세 한도를 초과하는 팀에게 적용되는 추가 제한선이다. 에이프런을 넘어가면 단순히 사치세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계약상의 제약이 추가로 발생한다.
- 미드레벨 예외 사용 금지
- 특정 트레이드 제한
- 새로운 계약 제한 등 여러 계약상의 페널티가 적용
결국 에이프런은 "더 이상 돈으로 찍어누르지 마라"는 강력한 규제 장치다. 이 때문에 많은 구단들이 에이프런을 넘지 않기 위해 트레이드나 선수 영입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
샐러리캡이 팀 운영에 끼치는 영향과 대표적인 사례들
샐러리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팀의 전략과 운명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트레이드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선수를 주고받을지는 단순히 전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양 팀은 서로 원하는 선수를 교환하려 해도, 연봉 총액이 규정 범위 안에서 맞아야 한다. 만약 연봉이 맞지 않으면, 좋은 거래라도 무산될 수 있다. 그래서 NBA에서는 삼각 트레이드나 보조 선수 추가 같은 복잡한 움직임이 자주 벌어진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샐러리 필러(Salary Filler)다. 샐러리 필러란, 트레이드 연봉 총액을 맞추기 위해 끼워넣는 보조 계약 선수를 뜻한다. 팀은 때로는 전력 외 선수까지 억지로 포함시켜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려 한다. 슈퍼스타 한 명을 영입하려 할 때, 연봉을 맞추기 위해 여러 명의 롤플레이어를 한꺼번에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2017년, 휴스턴 로케츠는 LA클리퍼스의 포인트가드 크리스 폴을 영입하기 위해 선수 7명과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 1장에 현금을 포함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단 한 명의 슈퍼스타를 데려오기 위해 사실상 8명의 선수를 내준 셈이었다.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도 사정은 똑같다.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가 시장에 나왔다고 해도, 샐러리캡 여유(캡 스페이스)가 없다면 영입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팀들은 필요 없는 계약을 악성 계약이라고 부른다.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팀 전체 운용을 막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LA 레이커스는 티모페이 모즈고프와 루올 뎅에게 거액 계약을 안긴 후, 몇 년 동안 FA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좋은 선수 영입은커녕, 샐러리 여유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정작 당사자들인 뎅과 모즈고프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선수들은 팀의 제안 금액에 서명했을 뿐이고, 그저 그 금액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긴 하다. 경기에 출전도 못하는 두 선수가 합쳐서 4년 간 1억 3,600만 달러를 수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팬들은 복장 터졌겠지만.
드래프트 역시 샐러리캡과 연결된다. 신인 선수들의 루키 계약도 연봉 총액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신인을 지명하는 것도 팀 재정 계획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NBA 팀들은 단순히 상한선(샐러리캡 ceiling)만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총 연봉 하한선(minimum team salary)도 반드시 채워야 한다. 만약 한 시즌 동안 팀 연봉 총액이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면, 부족한 금액을 팀 선수들에게 차등 지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팀은 젊은 선수들로만 팀을 꾸리다가 하한선을 못 맞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연봉만 높은 악성 계약의 선수를 덤프 트레이드로 받는 경우가 있다. 필요 이상의 금액을 감수하고서라도 하한선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한선으로 인해 생긴 훈훈한 일화도 있다. 2015년, 댈러스 매버릭스는 LA 클리퍼스의 주전 센터 디안드레 조던이 FA로 풀리자 4년간 8,1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에 구두로 합의했다.
그러나 조던은 클리퍼스 경영진과 팀 동료들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계약을 파기하고 클리퍼스에 잔류해버린다. 댈러스는 조던 영입을 위해 비워놨던 거대한 캡 스페이스를 한순간에 잃게 된다.
게다가 FA 시장의 주요 선수들은 이미 다른 팀과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다. 돈이 있어도 쓸 곳이 없는 난처한 처지였다.
이때, 댈러스 구단주 마크 큐반은 디안드레 조던과 함께 오기로 약속했던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슈터, 웨슬리 매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계획이 틀어졌다. 네가 원한다면, 계약을 파기하고 자유롭게 떠나도 괜찮다."
하지만 웨슬리 매튜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 약속했으니 댈러스에 오겠다" 고 결심했다. 이에 감동한 큐반은 원래 약속했던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즉석에서 4년 7,000만 달러로 더 상향 조정된 계약을 제시했다.
샐러리 플로어를 채워야 했던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약속을 지킨 매튜스에게 구단이 보답하고자 한 결정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NBA에서 아직 낭만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디안드레 조던 사건은 FA 시장 실패와 샐러리 운용 실패의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후 수년 동안 일부 팀들이 샐러리 플로어를 전략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NBA는 2023-24 시즌부터 샐러리 플로어 규정을 강화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새로 적용된 CBA(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단체협약)에 따르면, 이제는 시즌 개막 전까지 모든 팀이 반드시 샐러리 플로어(전체 샐러리캡의 90%)를 충족해야 한다. 과거처럼 시즌 중반까지 샐러리를 비워놓았다가, 덤프 트레이드로 고액 계약자를 받고 픽을 얻는 전략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이 규정 덕분에, 시즌이 시작되면 30개 팀 모두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 총액을 갖춘 상태가 된다. 탱킹을 위해 샐러리를 대폭 비워놓는 전략도 사실상 봉쇄되었다. 새로운 CBA는 NBA 전체의 경쟁 균형을 더욱 강화하고, 각 팀이 시즌 개막과 동시에 재정적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NBA는 이제, 보이는 코트 위의 경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숫자 싸움에서도 한층 더 치열해진 리그가 되었다.
마무리
NBA에서는 단순히 선수를 잘 뽑고, 돈을 많이 쓰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모든 팀은 샐러리캡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 안에서 싸워야 한다. 이 룰은 팀 운영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누굴 영입할 수 있을지, 어떤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 심지어는 트레이드, 드래프트, 선수의 미래까지도 이 룰의 영향을 받는다.
샐러리캡은 단순한 제약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NBA라는 리그를 더 전략적으로, 더 창의적으로,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다.
그래서 NBA를 진짜로 즐기고 싶다면, 화려한 덩크와 하이라이트 영상 뒤에 숨어 있는 이 ‘숫자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 NBA는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샐러리캡의 룰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게임, ‘계약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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